15년 전 그는 교회를 다닌다는 이유로 아버지로부터 쫓겨나 자취하는 친구들 집에
얹혀사는 신세였고, 나는 어머니 간호하느라 집에서 꼼짝 못하는 외로운 처지였다.
어려운 삶에 서로 마음이 통했는지 그 친구는 틈만 나면 나를 찾아와
아무도 만날 수 없던 내 고독한 시간을 달래 주었다.
혹여 집 밖에서 같이 밥을 사먹거나 차를 마실 땐 꼭 자신이 계산했다.
몇 푼 안 되는 벌이로 살던 그였지만, 엄마 간호 하느라 경제 능력 제로였던 내가
한 푼이라도 쓰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같은 교회 청년회 회장이었던 그는 내 생일이면 청년부원들을 잔뜩 몰고 와서는
어머니 간호에만 집중하며 청춘을 보내던 나를 위로하는 이벤트를 열어주었다.
지금 그는 세 아이의 아빠가 되었고 10월에 목사 안수를 받는다.
신학을 공부하고 다른 교회의 전도사가 되면서 서로 볼 기회가 적었는데
오랜만에 만나자는 전화를 주었다.
보고 싶었던 그와 양화진에서 만나 15년의 우정을 돌아보며
사역자와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찬 비바람과 매서운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코스모스처럼
교교한 양화진 달빛에 흔들리며 나눈 우리들의 대화는
삶의 고뇌를 믿음으로 견디며 감싸 안을 수 있는 공동의 영역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일이 뜻대로 안 되고 하는 일마다 답답한 심정을 어디엔가 토로하고 싶을 때
마음 맞는 친구와 나누는 대화만큼 위로가 되는 것은 없는 것 같다.
다윗처럼 절박하고 힘든 시기에 요나단같이 격려하고 위로하는 친구가 있었기에
지금 난 한 사람의 사회 구성원으로 살 수 있게 된 것이 아닌가 돌아본다.
향기도 있는 듯 없는 듯하고 누가 알아줄 만한 성공을 거두지도 않았지만,
서로 마주할 때 번지는 조용한 웃음과 변하지 않는 진심이 통하는 벗을 가진 것만큼
대단한 성공이 또 있을까.
고적함이 흐르는 한밤중에 코스모스처럼 같은 키의 얼굴을 맞대고
가슴 속 깊은 이야기를 훌훌 털어 낸 우리는, 아스팔트 옆 들풀처럼 살지라도
경이로운 가을을 빛나게 하는 꽃이 되고자하는 소망을 꼭 이루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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