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부도 아니고 중등부 아이들에게 간증해 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세대차가 크게 나는 아이들이 과연 내 이야기를 이해할지,
내가 아이들 코드를 파악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함께 참석한 교사들만 은혜 받는 거 아닐까?
설교 듣는 중에도 장난 치고 어린 아이의 모습을 벗지 못한 아이들은 그만큼
영혼도 순수하기 때문에 맑은 물감으로 그리지 않으면
흰색 도화지에 먹칠만 하게 될까 조마조마해진다.
게다가 어머니께서 쓰러지신 그해인 1997년생들도 있는 자리 아닌가!
중부명성교회 중등부 수련회를 앞두고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가난해졌다.
금요일 밤 어머니 간호를 마치고,
주말에 처음 예승이를 태우고 처가인 상주로 내려가
하룻밤을 자고 주일에 쓸쓸히 혼자 서울로 올라와 예배드린 후의
피로감이 가시지 않은 채 태풍이 덮치고 있는 서해안고속도로를 올라탔다.
태안으로 가려면 건너야 하는 서해대교에서 처음으로 강풍의 공포를 느꼈다.
핸들을 꽉 붙잡고 속도를 줄였는데 차가 흔들려
직진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강한 힘의 저항을 느꼈다.
강풍이 운전 위험 수준인 초속 25미터는 족히 넘는 듯했다.
태안의 수련회 장소(파인빌 쉼터)에 도착했을 때
부장집사님으로부터 태풍 때문에 당일 날 입회 취소한 아이들이 스무 명이 넘는다는 말을 들었다.
심한 태풍에도 아이들을 기꺼이 수련회에 보내신 부모들 마음을 생각하니
첫날 저녁 집회 강사로서 깊은 책임감이 들었다.
날씨 탓에 넉넉히 출발하여 예정보다 한 시간여 일찍 도착했기 때문에
학생들 모습을 관찰하며 분위기를 파악했다.
레크리에이션 후 잔디 축구장에서 활발하게 축구를 즐기는 아이들을 보니
컴퓨터 앞에서 장시간 게임중독에 빠지거나 방학 중에도 학원에 다니며
공부에 시달리는 모습으로만 알고 있던 이미지와는 딴판으로
건강한 중딩들의 활력을 느낄 수 있었다.
말씀과 좋은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수련회에 자녀를 보내지 않고
학원에 보낸 크리스천 부모들, 참 안타깝다.
둘째 날 강사는 최근 외부 활동을 시작했고, 내가 너무나 존경하고 사모하는 최용덕 간사님이다.
7080인 내가 물꼬를 트고 세시봉인 최 간사님이 절정에 올리는 중등부 수련회!
여기 온 아이들은 인생 최대의 터닝 포인트 시간을 잡은 거다.
경쟁에 끌려 다니지 말고 경쟁사회를 심판하는 아이들을 길러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려면 스카이 대학이 아니라, 복음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한다.
꿈을 가지고 공부하다가 스카이를 가게 되는 것이지
스카이를 목표로 경쟁에서 이기도록 푸시하며 공부시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크리스천 부모들마저 결국 우리 사회를 골병 들게 만드는 교육 풍토에 일조하는 모습이
비일비재함은 가슴 아픈 현실이다.
아이들과 같이 밥을 먹고 저녁 집회 시간 찬양을 하면서
오늘 내가 이들에게 전할 말씀의 아이디어를 구했다.
물론,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하나님은 가난한 마음으로 솔직하게 단 위에 올라가길 원하셨던 거다.
그렇게 여러 번 간증을 했으면서도 매번 떨리고 두렵고 준비한 원고가 생각나지 않는다.
저녁을 한 그릇만 먹기를 잘했다. 맛있다고 더부룩하게 먹었다면 체했을 것이다.
7시 반쯤 찬양이 끝나고, 6년 전에 찍은 KBS 뉴스 동영상이 상영됐다.
떠들던 아이들이 조용히 영상을 보더니, 내가 단 위에 올라가자 박수를 친다.
쑥스러운 얼굴로 인사를 한 후,
“실물이 훨씬 낫죠? MC몽 닮은 강사죠?” 하며 분위기를 잡으니 웃고 난리다.
뒤쪽에 앉은 머리를 밝은 갈색으로 물들이고 어깨에 카디건을 멋들어지게 묶은 아이들이
오늘 말씀 들어볼까, 하며 집중하는 눈빛이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집중력이 20분 남짓이라는 아이들에게
나는 두 시간 동안 참된 비전과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에 관해 들려주었다.
아무도 딴 짓하거나 졸지 않았다.
이 집중력에 깜짝 놀라 중간에 말씀을 끊어야 할 시간이 지났음을 짐작했는데
다음 순서를 위해 끊어달라는 신호를 안 주셔서 두 시간을 내리 달렸다.
아이들과 함께 기도하는 잠시의 시간 동안 하나님이 이 아이들 마음을 열어 주셨고,
갖가지 괴로운 마음을 위로해 주고 계심을 느꼈다.
교사들로부터 큰 격려를 받고, 10시 반이 다 되어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운전해 오는 동안 참 평안이 밀려왔다.
이를 위해 그토록 오랜 고통을 허락해 주셨구나.
이렇게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전할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훈련시키시기 위해.
갑자기 내 속에 대학･청년부에 가고 싶다는 소망 대신
청소년부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새벽 1시가 다 되어 집에 도착한 후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하나님의 위로를 느꼈다.
여전히 나는 죄인이고 힘없고 잘 쓰러지지만, 일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가난한 마음과 겸손한 고백에 있음을 묵상한다.
좀더 이해하고 받아주고 품어줄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한 후
휴가 후 업무와 일상을 마주하고 있다.
ps.
아이들이 뛰어 논 어메이징한 잔디구장!
이곳에서 함께 맨발로 축구를 하고 싶었지만 겨우 참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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