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1일
다른 직원들처럼 여행을 떠나거나 좀 편히 쉬고 싶은 소망을 위해
치밀하게 준비하고 실천하기보다
주어진 환경에서 육체적 피로를 돌볼 겨를 없이
온 몸으로 자존감을 끌어 올리며 견디고 사는 인생의 가치는 얼마나 귀한가.
한편으로는 때때로 터놓고 서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회식 자리의 소통이 직장 생활에서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실히 든다.
내가 일하는 기독 출판사는 다들 근무 시간 외에 서로를 이해하고
업무 때의 마찰을 풀기 위한 자리를 만드는 데 인색하다.
업무 끝나고 서로 치킨이라도 뜯으며 얘기 좀 나누자고 제안했다가
외계인 취급 받은 적도 있으니...
일반 기업에서 이곳에 온 후 나는 문서 선교의 사명감과
사소한 오해 플레이의 왜곡된 인식들 사이에서 갈등을 자주 겪는다.
출근 때마다 왜 기독교 직장에서 이렇게 사랑이 없는가, 고민하고 기도하고
내 삶의 가치에 대해 다운되지 않도록 겨우겨우 추스른다.
결론은 소통하고 이해하는 사람들과 일하고 싶다는 거다.
어제 월요 업무회의 시간에 뜻밖의 전달 사항을 들었다.
매출이 어려운 가운데도 사장님이 마케팅팀과 부장급 직원에게
아이패드를 지급해 주기로 했다는 것(내게 지급되는 건 아니어도
문화 사업을 하는 회사에서의 이런 선택과 배려는 기쁘지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올 여름 동경도서전에 과장급 전체를 보내기로 하셨다는 것.
입사한 지 2년 넘은 내게는 특혜와 다름없는 선물이라고 전달됐지만,
나는 얼씨구 기쁜 선물로 다가오지 않는다.
우선 직원 20여 명인 우리 회사에 과장이 여섯 명이다.
편집주간, 실장과 함께 아홉 명이나 동시에 해외 출장을 간다는 건,
대박 난 베스트셀러가 나올 때에나 가능하다는 내 생각과 1차 충돌했고,
그보다 더 혜택으로 기쁘지만은 않은 건, 내겐 여권이나 비자가 없다.
만들 필요가 없었고, 해외에 갈 마음이 생기지도 않았다.
신혼여행도 제주도로 짧게 다녀왔고, 이전 직장에서 우수사원에 뽑혀
호주로 2주 동안 연수를 보내주려 했던 때도 고사하고, 사무실에 그냥 출근했다.
어머니께서 중환자실에 계시다는 사실을 내 주변 사람들은 거의 알지 못한다.
언제라도 병원에서 전화가 오면 긴장하고 받아야 하고
무슨 일이 생기면 달려가야 한다.
그야말로 나는 해외여행에 결격 사유가 있는 직원이다.
더 오래 근무한 대리급도 받지 못하는 혜택을 받게 되어 기쁘지 않냐는 말에
그저 웃었다. 김 대리가 가고 싶어 하면 양보하겠다는 말을 하려다가
분위기 쏴아 하게 하는 듯하여 묵묵히 감추었다.
하루하루 생존에 대해 묵상하며 사는 나는,
혜택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 앞에서 어색한 존재다.
하긴, 때로는 명절에 혼자 계신 명희 누나 등 우리 교회의 외로운 분들을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나 또한 내가 내 상황을 설명하기를 포기한 사람들에로의
쓸쓸함을 탓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청년기 때 혼자 어머니 간호해 드리며 고독과 싸울 무렵,
나는 명절이 올 때마다 몹시 외로웠다.
그때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명절에는 내 가족들과 기름기 있는 음식 먹으며
살 찔 걱정하며 시간 보내기보다 교회의 소외된 이웃들을 찾아가리라 마음먹었는데
막상 결혼하고 보니, 사람의 삶이란 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더라.
아내는 꼭 가라며 잘됐다고 기뻐해 준다.
남편이 마음 푹 놓고 좀 쉬기를 바라는 아내의 마음은 고맙다.
올 여름 나는 생애 최초로 외국이란 나라를 가보게 될까?
아니면 평소 컨셉대로 집과 교회 그리고 어머니 병원 주변을 떠나지 않는
삶의 테두리를 유지할까? 아직까지는 나도 의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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