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0일
이금희 아나운서를 처음 가까이서 뵌 것은
2007년 8월 첫째 주 목요일로 기억한다.
그날이 내 생애 첫 생방송 출연 날이다.
아침 프로로 시청률이 가장 높은 아침마당이었고
당시 남자 진행자는 손범수 아나운서였다.
그 전에 MBC <화제집중>에서 짧은 휴먼다큐를 찍었다.
이틀 내내 찍고는 고작 7분이 방송됐다.
세 가지 이야기 중 마지막 하이라이트 부분에 편성됐고,
내가 좋아한 박나림 아나운서가 내 이름을 부르며
멘트를 해주어 설렜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피디에게 밝게 찍어 달라는 요청과
시크릿가든 같은 뉴에이지 가수가 부른 슬픈 음악 쓰지 말라는 부탁,
그리고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숨기지 말아 달라고 간청했지만,
그는 오히려 내 부탁이 힌트가 되어
시크릿가든 류의 음악을 썼고,
활기 찬 이야기가 아닌 들뜨기 쉬운 여름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슬프고 차분해지는 이야기로 편집했다.
하나님께 기도했다.
생방송 하나만 열어 주십사고.
그때는 기도가 참 신기하게 곧바로 응답됐다.
그 다음날 바로 아침마당 생방송 팀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KBS 1층 홀 커피숍에서 작가와 피디 두 분과 사전 인터뷰를 했는데
"신앙적인 이야기는 빼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 마'라는 뜻이 아니라 일생에 한번인 생방송인데
내 마음대로 해야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잠시 앞으로 넘어가서 MBC <화제집중>을 찍을 때 기억을 먼저 꺼내 본다.
2004년 7월에 <어머니는 소풍중>이 출간된 직후
연합뉴스에 내 기사가 나가고 KBS와 MBC에서 경쟁하듯 직접 연락이 왔다.
희대의 살인사건이 나고 나서 사회적으로 흉흉할 때
김영사의 신간 보도자료로 유포된 나와 어머니 이야기가
감동 뉴스를 찾던 방송과 매체 기자들에게 크게 화제가 됐었다.
나는 하나님의 때를 더욱 믿게 되었다.
가만히 있어도 여기저기 전화가 오는데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큰일 나겠다는 두려움마저 들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SBS는 나를 취재하려고 하지 않았고
MBC와 KBS는 경쟁하듯 연락이 왔다.
MBC <화제집중> 작가가 5분 빨랐다.
KBS <피플 세상 속으로>는 자신들의 방송이 더 길게 나오고
프로그램 성격도 훨씬 적합하다고 설득하며 내가 결정해 주기를 종용했지만,
나는 먼저 연락 온 MBC와 하겠다고 공정하게 응답했다.
주말에 작가로부터 연락을 받고 월요일에 담당 피디가 투입되었는데,
그는 지리산에서 다른 아이템을 찍다가 급히 달려왔다고 했다.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담배 냄새로 찌든 젊은 피디였는데,
내 이야기를 전달 받고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촬영에 앞서 자신이 나를 이해해야 제대로 찍을 수 있다며
내가 왜 이렇게 살아왔는지 자기를 설득해 달라는 것이다.
좀 당황스러워 어떻게 얘기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더니,
먼저 자기 얘기를 해주었다.
그 피디는 중고등학교 때 툭 하면 사고를 쳐서
어머니가 학교에 빌러 오는 날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왜 당신은 어머니가 쓰러진 후 그 긴 시간을 잠도 안 자고
집에서 스스로 의사와 간호사가 되어 보살필 수 있냐고,
그런 마음을 대체 어떻게 먹었냐고 물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로서 당연한 사랑을 가족 안에서 했을 뿐이고
특별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상을 특별하게 보고
방송팀까지 찾아오는 게 이상하다”고 했다.
내 말에 그의 얼굴이 더 알 수 없는 미로로 빠져드는 표정이었다.
사실 어려웠던 것은 내 삶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그 피디보다
방송을 위해 몇몇 다큐멘터리 연출을 요구할 때다.
이를 테면 내가 어머니 머리를 감기는 장면을 요구하는 것인데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카메라 앞에서 머리 감길 때가 아닌데
지금 방송 때문에 감기는 것은 일종의 다큐멘터리 연출에 해당하기 때문에
어색하고 거부감이 들었다.
자연스런 방송은 없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어쨌든 싸우지는 않았지만 약간의 밀고 당기는 대화를 통해
이틀간 촬영해갔고, 방송 분량 이상의 장면들이 있어서
어느 장면을 골라서 편집할지 무척 고심했다는 피디의 후기를 들었다.
MBC 사내에서도 매우 만족했다고 했고, 특히 김성주 아나운서께서
기억에 남는 아이템이었다며 그 이듬해 희망을 다룬 특집극에
제보해 주기도 했다.
다신 본론으로 돌아온다.
이금희 아나운서 얘기를 하려다가 길어졌다.
아침마당 찍을 때 매우 긴장했다.
기도한 후 당당하고 솔직하게 방송하자고 했지만,
그래도 깜빡 실수하면 사고 날 수 있는 생방송 아닌가.
내 앞에 개그맨 블랑카가 20분 정도 방청객 아줌마들을 웃기고 들어갔다.
나는 대기실에서 그가 개그맨인 줄 몰랐다.
그때는 개콘 잘 안 볼 때여서..^^
일반인인 내가 들어갈 때 그 이른 아침에 방청객에 오신 아주머니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향해 봤다.
그때는 두 엠씨의 소개가 있으면 스튜디오 밖에 서서 대기했다가
걸어서 들어가는 모습이 찍히면서 진행됐다.
물 컵을 갈아주지 않아서 블랑카가 먹던 물을 한 잔 들이키자,
이금희 아나운서께서 “에유, 목이 마르셨군요?” 하시면서
자연스레 말을 열어 주셨다.
사실 출연자들은 사전에 작가가 쓴 대본을 먼저 읽을 수 있다.
대략의 질문들을 파악할 수 있는데 재밌게도 대본이 전부 반말로 되어 있다.^^
이금희 아나운서는 역시 베테랑이었다.
대본에 있는 대로 하시지 않고 출연자인 내 눈을 맞추면서
그때그때 필요한 질문들을 주셨다.
신기하게도 다음에 이런 질문 들어오면 좋겠다는 내 예상이
두 엠씨의 질문과 꼭 맞아 떨어졌다.
방청석의 알바 아주머니들은 (그날 가족들에게 아침밥은 짓고 오셨을랑가?^^)
내 얘기에 웃다가 울다가 하시는데 난 매우 덤덤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저 8년 동안 일상으로 살아온 얘길 전해드렸는데
사람들은 웃고 울고 할 만한 얘기란 걸 그날 처음 알았다.
나는 그 생방송에서 지난 8년간 집에서 어머니만 돌보면서
다른 것을 거의 하지 못한 시간을 채운 것이
날마다 성경 말씀 보며 느낀 감동이었다고 전했다.
방송을 마치면서 손범수 아나운서가 다가오셨다.
먼저 악수를 건네시면서
“오늘 아주 잘 하셨습니다. 저도 크리스천입니다.” 하고
격려해 주셨는데 매우 큰 힘이 됐다.
그리고 이금희 아나운서도 손을 잡아 주시면서
감동적인 시간이었다고 말씀해 주셨다.
편안한 누나 같은 느낌이 드는 이금희 아나운서는 그 후
나를 깜짝 놀랬켰다.
그날 오후 통장 확인을 했는데 50만 원이나 되는 큰돈을
내 계좌로 입금시켜 주신 것이다.
당시에 나는 작가에게 내 통장번호를 방송에 노출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때는 방송에서 후원받는 것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이
믿음이라고 여겼었다.
이금희 아나운서는 작가에게 직접 문의해서 내 계좌번호를 파악하여 전해 주셨다.
그때 개인 메일로 감사의 인사를 드렸는데
황송하게도 내가 전한 메일에 예쁜 편지지까지 깔아서 답장을 주셨다.
2004년 그렇게 처음 이금희 아나운서를 뵙고
2005년 결혼 후 2009년에 다시 아침마당에 특별 출연했다.
존엄사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토론 시간이었는데
병원장, 변호사, 방송인 등 여러 유명인 패널들 사이에서
일반 출연자로 참석했다.
오랜만이었지만 이금희 아나운서께서 반갑게 인사해 주셨고
방청석에 있던 아내에게 ‘천사’라고 호칭해 주셨다.
나는 금요일 퇴근 후 어머니 간호해 드리러 병원에 운전해 갈 때마다
이금희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사랑하기 좋은 날>을 꼭 청취한다.
가끔 퀴즈 문자 메시지도 보낸다.
내 마음 속에는 늘 고마운 누님 같은 인상으로 계신
이금희 아나운서의 라디오 목소리는 마음을 평화롭고 따듯하게 만드는
매력이 물씬 담겨 있다.
이제 두 편으로 나눈 이 긴 글의 결론이다.
<우리 은총이> 신간 홍보를 위해 언론 매체에 발송하면서
두 곳의 라디오 프로에도 보냈다.
한 곳은 <사랑하기 좋은 날>이고 또 한 곳은 <별이 빛나는 밤에>다.
내가 좋아하는 프로와 이문세가 진행하던 청소년기 때 좋아했던 프로,
두 곳을 선택한 것이다.
지난 금요일 <사랑하기 좋은 날>의 작가님께 연락이 왔다.
은총이 책을 이번 한 주 동안 방송에서 홍보하고
청취자 선물로 올리고 싶다는 것이다.
앗싸~!! 내가 꿈꿔 온 바람대로 되었다.
<사랑하기 좋은 날>을 들으면서 이금희 아나운서가 청취자들에게
책을 선물로 주실 때 나오는 제목들이 부러웠는데,
이렇게 <우리 은총이>가 선정된 것이다.
별 것 아닐지 몰라도 2004년 여름, 처음 방송에서
직접 이금희 아나운서를 만났을 때 이후
늘 따듯한 느낌이 마음에 남아 있다.
<아침마당>에서 내가 쓴 책의 몇 줄을 읽어 주실 때도 좋았고,
이번처럼 내가 편집한 책이 선정되어 라디오 프로에서
소개해 주실 생각을 하니 또 기쁘고 좋다.
열심히 책을 만들어 좋은 반응을 보는 것이 편집자의 큰 기쁨이다.
그리고 저자에게 기쁨이 돌아가는 것이 큰 행복이다.
<우리 은총이> 파이팅이다!
오늘 이렇게 즐기면서 일하고 내일을 꿈꾸는 편집자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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