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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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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11월 27일, 그리고 만 1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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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을 지나오며, 그냥 넘어가기에는 단순하지 않은 날이어서 일기를 남긴다.
아침 일찍 깨어 성경공부 인도 준비를 하려고 창세기 교재를 펼쳤다.
거의 다 마무리하고 결론 부분을 정리할 즈음,
둘째 예승이의 칭얼대는 울음소리.
어제 아내가 몸살 기운이 있어 보일러 온도를 좀 높였는데
밤새 예승이가 더워서 잠을 거의 안 자고 보챘다.
교회 갈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었지만,
아내의 잠을 좀 보충시키고자 아이 둘을 데리고 놀다가
조금 늦게 교회로 서둘러 출발했다.
흐린 날, 선물 받은 재즈 캐롤을 들으며 운전하면서
기억의 저편에서 손짓하는 편린들을 보지 못했다.
오늘이 어머니께서 의식을 잃으신 지 만 14년이 된 날이란 것을...
1997년 그날은 금요일 밤이었는데, 2011년 오늘은 주일이다.
엄청난 한파가 몰아친 그때에 비하면 오늘은 비가 오는 고즈넉하고 춥지 않은 날이고,
12월 헌금 봉사위원 모임과 오후 예배 특송으로 가만히 생각할 겨를 없이 보냈다.
부부반 조 모임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출출하여 찐빵을 사먹고,
카시트에서 당당히 쉬를 한 영승이 옷을 갈아입혔다.
욘석은 아빠가 아무렇지 않게 처리(?)해 주리라 믿고 콧노래를 흥얼거리기까지 한다.
언제나 귀여운 녀석! 그런 당당함과 인생을 누릴 줄 아는 여유가 내게도 있었으면...
외곽순환도로를 타고 집에 거의 다 올 즈음,
신호등 대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차가 강하게 내 차 뒷범퍼를 들이받았다.
내려서 확인해 보니 아주머니 한 분이 운전하는 차였는데
전화를 받으며 운전하다가 충돌했다고 한다.
짜증이 잔뜩 났다.
아내도 비명을 지를 만큼 놀랐고 영승이, 예승이 괜찮은지 걱정스러웠다.
차는 손상되지 않았는지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지만 육안으로는 큰 탈이 없는 듯했다.
그 아주머니 명함을 받고 일단 집에 왔다.
아내와 나는 충돌에 좀 놀라면서 목이 뒤로 젖혀지긴 했어도, 다행히 아무도 안 다친 것 같다.
두 아들도 집에 와서 잘 노는 것을 보니 다행한 일이다.
범퍼에 작은 흠집이 생겼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 아주머니는 우리 말고 다른 까칠한 운전자와 동승자의 차를 쳤더라면,
아주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것이다.
병원 검사도 해보고 뒷범퍼도 교체하고 휠얼라이먼트 등 정비도 받을 만한 충격이었다.
이보다 더 안 좋은 사고가 아니었던 것에 감사하게 여기면서도
마음은 충격으로 인해 몹시 피곤하다.
사실 내 마음 속 충격은 1997년 11월 27일 밤과 무의식중에 연결되어 있다.
어머니가 갑자기 의식을 잃는 심한 뇌출혈이 있던 날,
나는 꿈 많은 대학 졸업반이었고, 대학원에서 전공 공부를 더 하고
사회에 나가려던 스텝에 올라와 있던 평범한 청춘이었다.
여전히 계속되는 여러 감당할 문제들 앞에서 내 한계는 분명하고,
믿음과 기도 외에는 견딜 수 없는 피로감이 늘 무겁게 어깨를 내리 누른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은 큰일을 견디는 내게
짜증 정도에 그치기도 하고, 간혹 그 짜증이 급다운 모드로
삶의 평안을 송두리째 앗아가기도 한다.
매사에 잔꾀를 일삼는 야곱을 만나 주신 하나님의
전폭적인 돌보심과 편들어 주심이 없었다면,
나는 불면의 밤에 신경쇠약에 걸렸을 것이다.
오늘처럼 뒤차에 들이 받치는 일도 '다행이다' 하고 그냥 넘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넘어가더라도 온갖 지저분한 생각이 남았을 것이다.
마하나임에서 하나님의 군대 천사들을 본 후에도
에서가 두려워 갖은 꼼수를 다 부리는 야곱처럼,
예배 잘 드리고 오면서 뒤차에 바쳤다고 짜증내고
지치고 상한 기억 수두룩한 지난 14년의 험악한 세월을 고백하며
자기 연민에 빠져 있을지도...
고단함이 그치지 않는 삶에서
경험상 그 고단함을 이기는 비결은 문제를 가볍고 단조롭게 다루는 데 있다.
우울한 까닭을 단순화시키고 피곤할 때는 어떻게든 여유를 가지고,
삶의 방식에 있어서는 최대한 의연하게 낙관적인 위로를 선택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감당하기 위해 선택한 것들이 모여서 조금씩 극복된다.
이왕에 뒤차 아주머니 이해해 줄 요량이었다면 운전하면서 정신없이 전화하며
암웨이 하시는 그분(명함 보고 알았다)께 "괜찮으니 조심하시고 예수 믿으시"라고 할 걸 그랬다.
이미 벌어진 일에 "어린 아이가 둘이나 타고 있는 차를 그렇게 세게 받으면 어뜩하냐"고
짜증낼 필요까진 없었다.
어머니의 병환, 오래 전에 시작되었고 언제가 끝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예수님 품에 안겨 한걸음 한걸음 계속 내딛어야 한다.
내 주 하나님께 조금은 따지고도 싶다.
직장 일도 그다지 재미없고, 주말 주일은 숨 가쁘게 지나가는 요즘,
뭔가 새로운 계기가 주어질 때가 되지 않았냐고...
이렇게 투덜거리는 걸 보면 하나님의 때를 바라보긴 해도 내 몸의 때를 좀 밀어낼 시간 아닌가 싶다.
더 길게 쓰면 말장난 될 것 같은 이 분위기 어쩔거나.
나보다 훨씬 아픈 시간을 보내고 계실 어머니께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가득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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