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8일 밤
운전하는 시간 동안 잠시지만
차 안은 여유와 쉼 그리고 삶을 돌아보는 감성적인 공간이었는데
잠을 못자고 운전하니 그런 유익은 졸음과의 악전고투로 바뀌었다.
오늘 퇴근하고 어머니 병원에 오는 시간이 그랬다.
그 컨디션으로 간호를 마쳤다.
힘이 아직 떨어지지 않았다.
이제 내일 영승이, 예승이에게 아빠 노릇 집중할 수 있는 것에
새 희망을 품고 간다.
그러고 보면 에너지는 쏟아 부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 쏟아 붓느냐에 따라 쉽게 충전되는 것 같다.
11월 19일 오후
아내가 영승이를 데리고 미장원과 시장에 다녀오는 사이
예승이 재우고, 잠시 TV를 틀었는데 메디컬 드라마 <브레인>이 나온다.
내가 편집한 책의 번역자 '유리엘(김수현)' 씨가 대기업 회장 딸 역할로
다시 나와서 반가웠고, 신하균의 강한 카리스마 등 볼거리 많고
박진감 있는 전개가 좋은데...
신경외과의 수술 장면들 - 머리를 밀고 뇌에 수술할 부분을 선으로 긋는 등 -
은 엄마 생각이 나서 채널을 돌리게 된다.
뇌수술은 드라마 장면만으로도 가슴이 아프다.
심한 뇌출혈을 수술로 회복시키기란 정말 어렵다는 것을 아는 나로서는
수술 장면만 보면 섬뜩한 생각이 든다.
11월 21일 새벽
주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늦은 시간,
아이들 모두 재우고, 일 좀 해서 출근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MBC <아름다운 콘서트>에 원더걸스의 선예와 예은이 나와
이집트의 왕자 OST 를 부른다.
괜히 원더걸스가 아니구나.
휘트니와 머라이어의 원곡 이상의 감동을 받았다.
곡도 곡이지만 이집트의 왕자를 극장에서 볼 때 그 시절
집에서 순수하게 어머니 곁을 지켰던 내 청춘이 떠올라,
회상에 젖었다. 노랫말처럼 내가 믿을 때 기적이 일어나리라 확신하며
달려왔던 세월...
이제 11월 27일이면 만 14년을 채운다.
11월에 추위가 밀려올 때면 마음이 스산해진다.
내 인생의 두 번째 생일이라고 할 만한 생의 전환기이자
큰 파도가 밀려온 날.
그런 삶을 거쳐 왔기에 내일 퇴근 후 수능을 마치고 수학여행 가기 전인
김포외국어고등학교 고 3 아이들에게 인생특강을 하러 간다.
보잘것없는 강사 초대에 감사.
시험 점수에 서운해 하는 아이들 좀 심하게 웃기고 와야겠다.
마우스가 고장 나 주일 점심 먹고 난 시간에 영파여고 옆에 있는
하이마트로 가서 마이크로소프트사 제품의 무선 마우스를 샀다.
같이 손잡고 데리고 간 영승이가 검은색을 사자면서 자신이 고른다.
그런데 이제 만 4세를 넘긴 이 아이, 디자인 안목이 탁월하다.
내가 봐도 참 괜찮은 걸 집어 들고는 "아빠, 이걸로 사자" 하는데
아기로만 보이던 아들이 갑자기 다 큰 청소년으로 보인다.
집에 와서 연결해 보니, 아주 쓸 만하다.
마우스 하나 바꿨는데, 마음이 새로워지는 걸 보니,
아직 나도 청소년인가 보다.
11월 21일 새벽
한겨레 사회 뉴스에 <10대들 사이 확산되는 '노스페이스' 유행 왜?>
기사의 사진이다.
이 사진이 연출이 아니고 진짜란 말인가?
고가의 노스페이스는 짱짱한 서민 고객들이 확보되어 좋겠지만,
우리 아이들 몰개성의 유행 풍조를 보니 가슴이 짠하다.
그것도 한두 해가 아니라 노스가 교복이 된 지 몇 해가 된 것 같은데..
답글 중 촌철살인이 있었다.
"교육이 산으로 가니 등산복을 입는 거지"
오늘 고3 아이들에게 인생특강하러 가면서
가슴을 파고드는 시린 바람이 휙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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