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9일 밤
회사 구조 상 이층 편집부와 아래 층 영업부에 통유리 창문이 뚫려 있어
웬만한 소리는 위아래층에서 다 들린다.
영업부도 몇몇이 야근하고 있는데 <나가수> 음원을 크게 틀어놓았다.
노래 소리 때문에 원고 집중에 방해가 되어 살짝 짜증이 나려던 차에
“엄마... 알았어. 그리고 엄마...” 하며 전화 통화하는 소리가 들린다.
갑자기 일할 의욕이 사라져 버렸다.
내가 엄마와 마지막으로 전화 통화해 본 지가 어언 15년 전이다.
엄마와 통화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 정신이 멍해졌다.
초고 작성 마감 앞두고 일하기 싫은 감상일까?
대화할 수 있는 엄마가 있다는 것이 40대 가장에게도 얼마나 좋은지
불특정 다수의 세상 사람들, 내 맘 아시는지...
11월 10일 아침
수능 일 아침 어수선한 뉴스들...
오늘 아침 자살한 재수생, 교감 폭행 학생에 대해 고발하기로 한 교육위,
그 사태로 학생인권조례를 집중 공격하는 보수 신문들,
경찰이 가로막은 김진숙 위원의 귀환을 다룬 한겨레,
괴담의 나라라고 밀어붙이는 조선일보,
안철수 교수, 박원순 시장을 까대는 (역시) 조선일보의 어느 책 광고,
SK의 돈 흐름을 집중 수사 중인 다음 뉴스의 굵은 글씨 특보,
어제 라디오스타에 나온 임태경의 돌싱 연예 기사,
GM대우 정규직 비정규직 작업복 색깔...
수험생들은 이런 혼돈의 세상에서 자신의 점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
그들이 나중에 나올 세상에 대해 푸른 희망을 가지길 빈다.
조카뻘인 청춘들이 앞으로 싸워나가야 할 세상.
자신이 얻을 시험 점수보다 중요한 것이 겸손과 용기란 것을 알게 되기를...
먼 과거에 치른 시험이 오늘 내 인생에서 그렇게 사생결단할 만큼
중요한 관문은 아니었다고 말한다면, 혹자는 이미 지나왔으니
배부른 소리하는 격이라고 조용히 격려해 주라고 하겠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가 아니고
세상은 혼탁하고 할 일은 찾아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꼭 그렇게 대학 물 먹기 시작하면서 공부 의욕을 잃게 만드는
작금의 현실에서 자기 몫을 찾기란 경쟁이 아닌 창발(창의적 발상)임을!
11월 11일 아침
오늘 태어나면 주민등록번호가
111111로 시작한다는 걸 김경철 선생님 글 보고 알았다.
그 아이들은 평생 자기 주민번호를 어떻게 생각할까?
뭐든 1등 해야 한다는 강박?
아니면 엉뚱한 자부심?
그냥 한번 상상해 보았다.
우리 영승이와 예승이 각각 11월 1일과 3월 11일에 태어나서
1이 반복되어 외우기 편해 좋은데,
오늘 태어나는 아이들은
부모에게 좋은 선물을 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지금 진통 중인 산모 분들 힘내시고 순산하세요~!
ps. 억지로 제왕절개 날짜를 잡아 오늘 태어나게 하는 사람들 뭐꼬?
11월 12일 저녁
주말 저녁 시간 넘기면서
어머니와 함께한 적은 과거 집에서
간호할 때 외에는 거의 처음인 것 같다.
오전에 큰아들 유치원 행사로
아빠와 함께하는 관악산 등반을 했다.
오늘 아내에게 많이 혼나고 나온 영승이 달래 주려고
목마까지 태우며 신나게 정상까지 갔다가 마치고,
안양예술공원으로 가서 놀이기구들도
원하는 대로 태워 주고 왔다.
그리고 간호용품들 챙겨 어머니 병원에
달려온 시간이 오후 네 시.
몸살 기운에 허리 통증을 참고 어머니 치료와
목욕을 시키는데 뭔가 울컥 치밀어 온다.
오늘따라 병실 TV에서 김현식의 노래를
홍경민과 젊은 가수들이 부르는데
원곡을 듣던 그 때 그 시절이 떠오르는데...
절망과 자유를 넘나든 가수 중에
김현식만한 이가 또 있을까.
꼭 나의 하루하루처럼...
차분히 운전해서 아그들 보러 가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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